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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방송리뷰(+개인생각)

[어쩌다 어른 설민석]식사를 합시다1_구석기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LIgEg

안녕하세요. 태건에듀 설민석 선생님 유명하죠? 일반인을 위한 한국사 교양강좌까지 하십니다.

오늘은 어쩌다어른 설민석 선생님의 식사를 합시다.(역사의 사) 요약 편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번 프리미엄 특강쑈는 어쩌다 어른 사상 최다 인원, 모두가 기다렸던 특강이라고 해요.

실제로 "식史를 합시다"는 평균 8.7%, 최고 10.3%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고 합니다.

이에 설민석선생님은 "국민들이 보내는 역사에 대한 사랑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감사함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미 설민석 선생님은 어쩌다 어른에서 강연을 했었습니다.

2016년 강연 키워드는 '초심'이었고요, 이번 2017년 강연 키워드는 무엇인지 김상중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설민석선생님은 2016 병신년 다음이 2017 정유년 인데, 역사 속 정유년 은 수난시대였다고 합니다.

육십간지 60년 주기로 찾아오는 정유년에는 무슨 일이있었을 까요?

6.25,1897년 러시아 공관에 피신했던 고중에 경운궁(현재 독수궁)으로 다시 돌아온 해,1837년 정유년은 백성들이 세도정치로 피해를 본해, 1777년은 영화 역린으로도 유명하죠?

그럼 2017년의 정유년은 어떻게 보내야할까요?

해답은 420년 전, 1597년 정유년에 있다고 합니다.

바로 명량대첩이 일어난 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휴전 교섭이 결렬된 뒤 왜가 다시 처들어와 일으킨 전쟁이라고 하는데요.

이때 국민들이 힘을 합처 이룬 기적의 역사를 본받자고해요.

2017년 나라 안팎으로 힘들더라도 국민이 하나로 단결하면 위기가 기회로, 전화위복 될수 있다고 합니다.

 

이번 2017신년특집은 지식과 의식을 모두 담은 역사 특강의 결정판이라고 합니다.

바로 역사 통사 프로젝트 - 식사를 합시다 입니다. (식史를 합시다)

 

먼저 식사(史)하시기기 주의 사항이있는다고 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데에는 다양한 시각이 있는데요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고 해요.

그래서 여기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8종을 기준으로 강연을 한다고 합니다.

 

역사 첫끼 선사시대.

역사를 통해 감동하는 이유는 역사 속 인물들의 희로애락에 공감하기 때문인데요.

선사시대는 우리에게 너무 먼 것같이 느껴저서 공감할 것도 별로없어보입니다.

허나 설민석 선생님은 선사시대는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라며 걱정할거 없다고 하세요.

먼저 선사시대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역사시대보다 앞선게 선(先)사시대라고 한답니다. 역사시대는 기록이 있는 시대고 선사시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시대죠.

기록이 없으니 유물 유적등으로 짐작한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한중일 땅이 연결돼있었고요, 사냥감과 따듯한 곳을 찾아 이동 생활을 했기에 직계 조상은 없었다고합니다.

빙하기가 끝나고 찾아온 후빙기에는 해빙과 해수면이 상승했다고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아는 지도처럼 변하게됐습니다.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거처 한반도에 정착한 인류를 우리 조상으로 본다고 합니다.

역사의 중심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를 배우기전에 일본이 주장한 한반도 지배 논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내선일체:일본과 조선은 한 몸이다.

일선동조론:일제가 퍼뜨린 역사 이론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의 조상은 동일하다.

즉 우리나라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기위한 정책인데요.(지배 합리화 정책)

이런 지배 합리화 정책은 식민사관의 중심논리가 됩니다.

때문에 일본은 조선보다 역사가 유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없는 구석기 유적이 조선에서 발견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동관진 유적이 발견됐는데도 일본은 구석기 유적임을 부인하게 됩니다.

이상황에 딱 맞는 고사성어로 설민석 선생님은 "지록위마 [指鹿爲馬]"를 말하십니다.

(어원을 통과하실분은 회색글씨를 넘기시면 됩니다.)

지록위마 어원

진(秦)나라 시황제를 섬기던 환관에 조고(趙高)란 악당이 있었다.

조고는 시황제가 죽자 유조(遺詔)를 위조하여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데다가 어리석은 호해(胡亥)를 내세워 황제로 옹립했다.

그래야만 자기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호해를 온갖 환락 속에 빠뜨려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다음 교묘한 술책으로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한 원로 중신들을 처치하고 자기가 승상이 되어 조정을 완전히 한 손에 틀어쥐었다.‘이제 내 세상이다.’

 

조고는 입을 다물고 있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자를 가리기 위해 술책을 썼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를 어전에 끌어다 놓고 호해한테 말했다.“폐하, 저것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폐하를 위해 구했습니다.”“승상은 농담도 심하시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指鹿爲馬(지록위마)]’ 무슨 소리요?”“아닙니다. 말이 틀림없습니다.

”조고가 짐짓 우기자, 호해는 중신들을 둘러보며 물었다.“아니, 제공들 보기에는 저게 뭐 같소? 말이오, 아니면 사슴이오?”

그러자 대부분 조고가 두려워 ‘말입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나마 의지가 남아 있는 사람은 ‘사슴입니다.’ 라고 바로 대답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대답한 사람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가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러고 나니 누구도 감히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지록위마 [指鹿爲馬] (고사성어 따라잡기, 2002. 5. 15., (주)신원문화사)


 



자신들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의 태도는 지록위마에 나오는 조고와 다를 바가 없다고 합니다.

지록위마의 결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조고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됩니다.

이후 연합군의 공격과 독립군의 활약으로 일본은 패망하게 됩니다.

조고와 일본의 사례를 통해 보면 "역사를 조작하면 반드시 역사가 심판한다"라는걸 알 수 있다고합니다.

 

1945년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하게됩니다. 이후 곳곳에서 구석기 유물과 유적이 발견됩니다.

그중 역사를 뒤집는 놀라운 발견이 있었는데요.

바로 주먹도끼 입니다.

 

단순한 돌 처럼 보여도 당시 구석기인에게 주먹도끼란 최첨단 도구였다고해요.

주먹도끼의 용도는 가죽 찢기, 나무 가공, 짐승 사냥 등 구석기 시대의 맥가이버 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주 발견지는 유럽, 아프리카, 서남아시아고 동아시아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점은 서구 우월주의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주먹도끼의 발견으로 모비우스 이론이 깨집니다.

기존에는 아시아는 찍개 문화권이라고 무시했다고해요.

찍개는 좌측의 짱돌같이 생긴 돌입니다.

주먹도기처럼 다용도로 쓰기엔 무리가 있죠.

아시아의 자존심을 되찾아준 사건이라고 합니다.

이 주먹도끼는 누가 찾아서 학계에 보고한 것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주한미군 병사였던 그렉 보웬입니다.

그렉 보웬이 당시 상미씨랑(당시 여자 한국 여성 여자친구분 이름, 현재 와이프(상미 보웬)) 한탄강 데이트 도중 바닥에서 주워든 돌멩이가 있었어요.

전공이 고고학이었던 그렉보웬은 일반적 돌멩이가 아님을 직감합니다.

그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전공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게되고, 정말인지 연천전곡리를 답사를 하게됩니다.

구석기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고해요.

결국 그러한 이유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먹도끼가 됩니다.

연천전곡리의 주먹도끼가요.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견으로 전 세계의 역사학계가 발칵 뒤집어집니다.

논문도 다시 쓰여졌다고 해요.


 



당시 일본은 일본에 없는 유물이 한국에 나왔다며 자존심 상해했습니다.

그때 유달리 분노했던 1인이 있었습니다.

바로 후지무라 신이치입니다.

그는 고고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구석기 유물을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가 발굴할때마다 일본최초 4만 년전 추정유물 발견, 70만년 전 유물 발견등 위대한 업적을 남겨 교과서에도 실리게 됩니다.

그의 노하우는 단순히 구석기인이 살았을 거라짐작하는 장소에서 구석기 냄새를 맡다보면 감이 온다고했다네요.

이렇게 세계에 일본의 유구한 역사를 알렸는데..

어느날 마이니찌 신문사로 제보가 옵니다.

의심1. 우연이더라도 매번 나올까?

의심2. 오랜 기간 땅 밑에 묻혀있던 유물임에도 바짝 말라있다?

합리적 의심임을 공감한 마이니찌신문의 양심있는 기자들이 잠복하여 몰래 취재하기를 결정합니다.

결국 그들은 현장을 포착하게 됩니다.

알고보니 가짜 유물을 땅에 묻은 것이죠.

나중에 자기가 묻은걸 다시 발굴하는 방식으로 사기치는 수법입니다.

기자는 확실한 증거를 녹화하게됩니다.

증거를 숨기고 인터뷰를 요청하게됩니다.

마이니찌기자: 어떻게 신의 손이라 불리게 됐습니까?

후지무라신이치:자기자랑 삼매경 30분 이상.

마이니찌기자: (조작 증거 영상을 보여줌)

이후 이 사건은 신문에 대서 특필됩니다.

일본은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되고요.

결국 후지무라 신이치는 사죄를하게됩니다.

앞서 말했던 지록위마 [指鹿爲馬]를 기억하시나요?

역사를 왜곡한 자의 최후를 보고계십니다.

이후 국제 학술대회에 일본 학자들은 참석도 못했다고해요.

나중에 참석을 했지만 꿀먹은 벙어리가됐다고합니다.

일본에게는 일본고고학 이미지를 실추시킨 수치스런 사건이라고 합니다.

선사시대의 역사가 현 국가의 자좀심에 여향을미치니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구석기 유물을 조작할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영웅이 탄생하게 됩니다.

바로 한국 구석기 역사에 획을 그은 김흥수 선생님입니다.

그는 70년대 석회석 광산을 운영 중에 곰 뼈,상아등 동물 뼈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당시 충북대학교 이융조 교수에게 물어봤더니 위대한 발견이지만 정작 중요한것은 사람의 유골이라 사람의 유골이 나오면 좋았을텐데.. 라고하셨다고해요.

세월이지나 1982년이 됩니다.

그는 석회채굴을 위해 일대를 누비던 중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에 가게됐다고 합니다.

거기서 5-6세 가랑의 어린아이 두개골을 발견하게되죠.

그는 이융조 교수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생계의 갈림길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되지요.

당시 대한민국에선 보상할 길이없어서 감사장 하나와 발견된 어린이 이름을 흥수아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해요.

설민석 선생님은

"굳이 총을 들지 않아도, 안중근 의사처럼

태극기를 들지않아도

유관순 열사처럼

나의 이익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다면

그것이 바로 애국의 길이아닐까?"고 정리해주십니다.

여기까지 긴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뒤에 이어서 신석기를 강연하십니다.

신석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이어서 쓰겠습니다.

^^